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왕의 난 (문단 편집) === 타임라인 === * 291년 '''양준''' VS 사마위 + 가남풍 '''사마량''' + '''위관''' VS __사마위__ + 가남풍 '''사마위''' VS __가남풍__ * 300년 '''가남풍''' VS __사마륜__ + 사마경 '''사마륜''' VS --사마윤--[* 사실 팔왕의 난 가운데 유일한 방어 성공 케이스지만…그렇기 때문에 묻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. 게다가 다른 왕을 죽인 적이 없는 사마량은 위관과 함께 정권을 장악한 적이 있지만 사마윤은 정권을 장악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. --패자는 말이 없다--] * 301년 '''사마륜''' VS __사마경__ + 사마예 + 사마영 + 사마옹 + 사마흠 * 302년 '''사마경''' VS __사마예__ + 사마영 + 사마옹 * 304년 '''사마예''' VS __사마영__ + 사마옹 * 306년 '''사마영''' + '''사마옹''' VS __--사마치--__[* 사마치가 팔왕의 난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한 것처럼 서술하였는데, 전혀 그렇지 않다. 사마치는 자체적인 군대도 없었으며, 팔왕의 난 때 전혀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였다.] + 사마월 그러니까, 291년 이래로 대략 '''한 놈이 나댐 → 나머지가 합동으로 조짐 → 그 가운데 한 놈이 나댐 → 나머지가 합동으로 조짐 → 그 가운데 한 놈이 나댐 → 나머지가 합동으로 조짐'''의 --[[루프물]]-- 테크를 탄 걸 알 수 있다. 사마충의 재위기가 290년부터 307년까지니 사실상 사마충의 치세 전부가 팔왕의 난이었던 셈인데 그나마 가남풍이 사실상의 실권자였던 291년~300년 까지가 그나마 안정된 시기라고 해야 할 듯하다. 사마위의 난은 후기 팔왕의 난보다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난 감도 있고, 사마씨들이 서진을 대놓고 말아먹은 시기는 300년부터 306년 사이이기 때문이다. 여타 사건들의 경우도 그렇지만 팔왕의 난도 여러모로 중간에 어떻게 더 제대로 수습될 만한 분기들이 있었다. 가령 가남풍이 사마휼을 암살하지 않았다던가, 사마륜과 사마경이 축출된 이후 사마영이 사마예의 통수를 치지 않고 잘 협력한다던가, 하다못해 사마영이 집권한 이후 똑바로 정신을 차렸더라면 최악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. 물론 역사상의 수많은 파국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수습이 가능한 지점을 죄다 놓치는 바람에 팔왕의 난은 영가의 난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